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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아침숲길] 나 아닌데요 /조말선(12/2)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16-12-05 10:47:17, 조회 : 1,704, 추천 :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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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당신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다정하게 아는 체를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당연히 솔직히 대답을 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일관되게 나 아닌데요, 라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홍상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민정은 연인 영수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이 맞춰지는 것을 거부하며 혼자 카페에 앉아 있다가 아는 체를 하며 차례로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계속 그들이 알고 있는 민정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남자1은 구체적인 이름까지 들먹이며 아는 체를 하지만, 민정은 급기야 엉뚱하게 자신이 쌍둥이라고 해버린다. 남자1과 헤어져 또다시 카페에 앉아있는 민정에게 다가온 남자2는 2년 전에 출판사에서 만난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민정은 그 여자는 자신이 아니며 자신은 지금 출판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남자1이 다가와 민정에게 아는 체를 하자 민정은 또다시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민정이 끝없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진짜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사람들이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부정일 것이며, 네 번째는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유의 복합이거나 그 어디쯤으로 보여진다. 줄기차게 민정을 찾아다니는 영수와 만났을 때 주고받는 대화에서 민정은 또다시 자신은 영수의 연인 민정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영수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런 민정을 받아들인다. 그 장면에서 홍상수는 영수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그래 맞아, 사랑하는 감정만이 진실일 뿐 인생은 모두 척, 하는 것이고 요식행위일 뿐이야'.

이 대사는 최근의 홍상수 감독의 스캔들과 연루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지만 척, 하는 요식행위의 세계는 상징계의 세계로 읽힌다. 정신분석학에서 상징계의 세계는 법과 관습이 지배하는 세계,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했다. 홍 감독은 민정의 가당찮은 '나, 아닌데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상징계를 지배하는 규범의 세계가 진짜 제대로 된 세계일까 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영수의 주변인들은 자유분방한 민정이 영수의 신붓감으로 적당한지 않는지를 나름의 잣대를 갖다 대고 남자1과 남자2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민정이 진짜 민정이라고 규정짓는다. 거기에 대해 민정은 자신을 정형화하려는 주변인들의 논리와 규범과 틀을 부정하려는 몸짓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치지 않고 표현한다.



민정의 끊임없는 부정은 크리스테바의 용어를 빌리자면 상징계를 교란시키는 몸짓이다. 민정의 '나 아닌데요'와 요염한 눈짓과 낯선 남자들과의 폭음은 실재계, 즉 계산과 논리와 합리성을 무너뜨리는 아브젝트(abject)의 세계를 드러낸다. 크리스테바가 지칭한 아브젝트(abject)의 세계는 더럽고 비천한 속성들을 드러내기, 반미학적인 추라고 여겨졌던 비참한 것, 꼴불견, 진부한, 우연적인 것, 임의적인 것, 엄청나게 큰 것들과 다양한 불쾌한 현상들로 보는 볼품없는 것, 죽음, 공허한 것, 소름 끼치는 것, 구역질 나는 것, 괴기한 것, 악마, 마녀에 관련된 것 등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우리가 늘 보고 듣고 행할 수도 있는 세계이지만 덮어서 감추려는 세계이기도 하다.

민정의 행위는 척, 하는 요식행위가 난무하는 세계에 대한 주먹질이자 강렬한 부정의 몸짓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되물음이다. 우리가 감추고자 하는 것이 있지나 않은지 우리가 감추고자 하는 것이 진정으로 감추어져야만 하는 것인지 스스로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나는 모르는 사람입니다'이다. 최순실은 고영태를 모르고 차은택은 김종을 모르고 우병우는 차은택을 모르고 최순실은 우병우를 모르고 김기춘은 차은택을 모르고 차은택은 최순실을 모르고 모른다고 대답하던 정호성은 다시 최순실을 안다고 하는데 김기춘은 최순실을 모르고…. 돌아오는 뜨거운 감자를 옆 사람에게 건네주기 위해 술래잡기를 하는 듯이 실체는 드러났는데 주체는 없다. 그들은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듯 물증이 드러날 때까지 심증대로 해석하라는 듯이 끝까지 부정의 몸짓을 취하고 있다. 그들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은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거짓말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일 수도 있다.

민정의 부정은 단순한 논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척, 과 요식의 세계에서 진정한 자신에게 가 닿고자 하는 자유의 몸짓으로 읽히지만, 그들의 터무니없는 아이러니하게도 맥락을 달리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다져진 관료적인 상징계 뒤에서 행해진 더럽고 비천한 아브젝트의 세계를 '나 아닌데요'라는 말간 부정으로 감추려고 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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