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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시집『어느 詩낭송』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08-08-16 11:02:51, 조회 : 4,178, 추천 : 839

‘왼쪽’ 골목길을 위한 연가
― 김재홍의 󰡔어느 詩낭송󰡕을 대상으로

                                  문  선  영(문학평론가)


1.
󰡔어느 詩낭송󰡕의 이야기는 시인의 삶 속 삶의 무대와 삶 속 삶 바깥의 무대, 그리고 그 경계 어디에선가 시인의 머릿속을 헤집는 기억의 무대로 갈린다. 철저하게 직관적인 사유의 흐름을 따라 시인의 이야기는 질주한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어느 詩낭송󰡕은 앞선 󰡔가야산 호랑이󰡕의 연계선상에서 좀더 세심하게 삶의 문제들을 다룬다. 사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깔보는 사람들의 대립, 비주류가 겪어야 하는 주류 중심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 본능에 따른 무분별한 번식의 참담함과 같은 은유의 메시지들이 전 시집에 비해 다소 파편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깥의 이야기들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그 전체를 아우르는 시인의 정서만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 속의 개울처럼 맑고도 한결같다. 나는 “세상에는 나쁜 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시인은 참 좋은 벌레다.


2..
“나 어릴 적 곧잘 다니던 골목길”(「그 왼쪽, 골목길」), 이곳만큼 이야기가 시작되기 좋은 장소도 없다. 골목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드넓게 펼쳐진 현실은 숭고하기까지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그들은 줄곧 목숨을 걸고라도 이곳을 벗어날 상상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 현실적인 인간과 유년 시절 골목길 사이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나 어릴 적 곧잘 다니던 골목길/ 여고 담벼락을 위태롭게 끼고/ 맞은편 동네어른들의 옆구리 두어 번을 건드려야/ 어디메쯤 두 갈래로 나타나는 그 골목길/ 가끔씩 그믐달이 차올라/ 멀건 보안등마저 어둠에 떨던 날엔/ 왼쪽으로 난 그 길,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 먼지 자욱한 소문들이 단지/ 애기 무덤 주변만을 떠돌 뿐이라고/ 거미줄 낮게 낡은 흉가 정도 매달려 있을 뿐이라며/ 곧장 가면 환한 큰 길 재빨리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열 살 난 걸음으로 달래곤 했지만/ 늘 발목은 이미 반대편 길을 더위잡고/ 쫓아오던 개 짖는 소리도 사라지고/ 점점이 반딱이는 불빛/ 밤 오래 궁시렁거리는 방앗간 소리에, 겨우/ 마음을 내리며 매번 돌아가고 말았지// 아직도 가지 못한 그 길/ 꿈속 신화가 되어/ 지금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지
- 「그 왼쪽, 골목길」

‘왼쪽’에 대한 관심은 이 시집의 출발점이다. 왼쪽으로 난 길은 “아직도 가지 못한” 길이다. “꿈속 신화가 되어/ 지금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길이다. 이러한 왼쪽으로 난 길 너머 있는 세상은 “무너진 생의 부피만큼 보지 못하는/ 사라져버린 왼 편의 세상”이다(「어느 낯선 길의 실루엣」). 여기서 왼쪽은 손에 잡히지 않는, 온열제같은 인연들이다. 또는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시인이 보이는 첫 번째 화두인 왼쪽에 대한 관심은 ‘틈’으로도 형상화된다.

숨 쉬며 걸어가는 순간순간을 헤집어보면/ 무수한 틈이 자리해 있다// 햇살이 잘박하게 젖어가는 한낮 뒤로의 반짝거림/ 그러나/ 그 틈을 향한 돌문은 좀체 열리지 않는다// 보도블록 사이로 떨고 있는 민들레의 꽃잎이 몇 개인지/ 헤아릴 수 있는 마음 없다면/ 시장 후미진 좌판에 펼쳐진 할머니의/ 하얗게 주름진 눈짓 읽어 낼 수 없다면/ 창공에 넌지시 던져진 속살 구름/ 마음속 화폭으로 슬쩍 옮길 수 없다면// 틈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찰나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열사(熱沙)의 가시 돋친 선인장 같은 목숨만이/ 서걱이는 모래바람의 혀로 길게 드리워질 뿐/ 내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다 열어/ 느릿느릿, 더 천천히/ 몇 방울의 짠한 눈물로/ 세상으로의 연주를 시작할 때, 비로소/ 그 틈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다// 틈 속엔 생을 밝힐 비밀이 무수히 숨어 있다
- 「틈」

틈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초심이기도 하고(「봄날에 서서」) “오로지 옆자리 매끈한 족속과의 튼튼한 연대를 위해” 마련된 장소이기도 하다(「플라타너스와 전봇대와 새」). “틈 속엔 생을 밝힐 비밀이 무수히 숨어 있”는 셈이다
이러한 틈은 유토피아와 맞물려 있다. 시인은 ‘아일랜드’와 ‘율도국’을 꿈꾼다(「거울 속 나라). 아일랜드는 “만질 수도 갈 수도 없는” 나라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더럽혀지지 않은 선택된 땅”이자 “어젯밤에도 꿈꾸었을 새로운 나라”이다. 율도국은 “긴 밥숟가락이라도 서로에게 떠 먹일 줄 아는” 다정한 나라이다. 현실에는 그러나 “그 반대편 너머로” “아직/ 잠자리를 찾지 못해 멀거니 서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유토피아를 위해 시인은 너그러움이라는 키워드라는 선택한다. “적어도 깍지를 끼고/ 여유 부리듯 묵상할 수 있는 한” “이렇듯 깍지를 끼고/ 마땅히 기도할 수 있는 한/ 세상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말한다(「손가락이 그리운 사람들」). 이러한 너그러움은 “시린 쪽빛 바다가 창살 되어/ 하늘보다 육지가 더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 점 혈육마저 거세당한 천식 같은 울음/ 그저 입안으로 삼켜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가움보단 손가락을 매만지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공허한 울림을 동반한 자비에서 비껴난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한 방향으로 왜곡된 결을 다른 쪽으로 솔질하여 현재와 대면하고 싶어한다. 현재와의 접점이 없다면 「그 왼쪽 골목길」은 한가한 회고 지향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와 현실이 만나는 그 경계선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폭력의 신세계가 도래한 지 오래. 실내에 조명등을 켜놓았다 해도 맞부딪치는 무릎과 시린 어깨를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시는 한편으로 현실을 더 밝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바닥에 어두운 심연을 깔고 있는 창이기도 하다. 시인의 다소 침잠된 어조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모호한 선과 악을 보여주는 바탕이 된다. 시인은 선과 악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시인은 󰡔어느 詩낭송󰡕에서 매우 풍요롭고 많은 주름이 져 있으며 여러 해석이 가능한, 유쾌하면서도 쓸쓸한 텍스트를 창조해 냈다.

여전히 뿌연 두꺼운 안경알 너머 함께 발 디뎌야할 세상은 선뜻 다가오지 않고, 이 머리털 뿌리마저 뽑힐 팽팽한 불일치만이 빗물에 후줄근히 젖어 가는/ 아, 시큼한 김치 한 조각마저 아쉬운 내 생의 귀퉁이 한 자락
- 「생의 귀퉁이를 생각하다」  

불타는 역사/ 검게 그을린 비명만이 날카로이 지하 철로를 맴돌고/ 살려 버둥거렸던 자리엔 흰 국화만이 떨어져 있을 뿐/ 더는 숨을 곳 없는 이 지구상에서/ 누굴 위해 불러 줄 노래마저 없는 지금/ 모두들, 마른침만 꿀꺽 삼키고 있다
- 「더 이상 숨을 곳 없는, 지금」

“무심히 찾아들은 입구/ 갑갑해 빠져 나오지 못할 그 길목에서/ 오만한 우리들의 속도는 애초부터/ 길을 잃어버릴 운명이었다”(「조령 가까운 터널에서 길을 잃다」). “지금, 우리 시대의 타잔”마저도 “하나 있는 밧줄 움켜쥐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다(「우리 시대 타잔」). 시인이 처해 있는 세계는 언뜻 출구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시인의 불안한 세계는 그 안에 있는 인물들에게 함정이 되거나 혹은 점차 무덤으로 변하게 될 공간이다. 이 불투명한 공간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폭력과 배신으로 얼룩진 세계의 부자연스러운 감금자가 된다. 호객행위를 해야만 연명되는 세상, 참으로 냉정하다. 비어 있는 부분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 외면하고 방관하지 않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시인은 소외된 노동자의 죽음에 허망해 하기도 하고(「한 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화려히 선택받은 강남에 붙박고 사는/ 조막손에 움켜쥔 수십 만 원짜리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며(「조간신문을 읽다가」), 분단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길-도라산驛에서」). 이렇듯 그는 “현대사의 아픈 한 페이지”(「美柳나무 그늘에 서다」)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무성생식으로 뜻하지 않은 사유를 퍼뜨리고, 불륜에 빠진 감정들의 충돌이 격해지면서 우리는 서로간의 부정할 수 없는 간격을 확인해 간다. 개인과 시대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가야산 호랑이󰡕에서 개인과 운명을 바라봤던 그것과 통한다. 제 자식에게 보여주는 작품마저 음산한 폭력의 기원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시인, 그의 그런 시적 운명이 절절하다. 삶의 중력을 과감히 껴안는 시인의 마음자리는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다.
시인이 꾸는 꿈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근대 이데올로기를 무화해 우리의 의식을 제로베이스에서 출발시킬 수 있는지 가늠해보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삶의 고통과 사회적 논쟁. 연대 없는 개인적인 성찰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시인은 강조하려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시인의 시각은 냉정하지만 내면 깊이 들어가는 카메라다.
시인은 독자가 참담한 심정으로 절망하는 것까지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이 일상을, 삶을 바라보는 수식 없는 태도는 이 시집에 도리어 짙은 사회성을 부여한다. 똑 떨어지는 상상력, 이른바 신경증적 미학의 80년대를 지나 온 삶의 내력이 묻어나는 순간이다.
시인의 작품들은 삶의 상처와 고통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적 화자는 언제나 삶의 갖가지 트라우마에 짓눌려 사는 존재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도 시인은 삶을 제쳐 둔 거대담론을 무책임하게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시인은 “나를 내쫓는 또 다른 나를” 매일 만난다(「욕탕 속의 나」). “태어남이 오히려 한숨으로 기습되는/ 그 어떤 날도 있었지만” “오늘도/ 피할 수 없는 자리, 장승처럼 버티며/ 또 하루를 읽어”낸다. 그는 “지금 여기 서 있”다(「오늘도 그 사내가 서 있다」). 솔직하고도 편안한 화법이다. 진실을 마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때로 진실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삶의 트라우마들은 미로에서 벗어나 그 무게를 덜어낸다. 때로 “신이 점차 시가 돼야 한다는” 엄청난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신과 시」), 그는 가슴을 담아 시를 쓴다. 겸손하고도 겸허하게 내면 성찰을 잊지 않는 그의 성실함 덕분이다.  

꽃으로 태어났더라면// 메마른 흙먼지 뒤집어쓰고/ 벌판 흐드러지게 차지한/ 시들었다가는 다시 한껏 피워올리는/ 몇 번의 우주가 내려앉은 가지 끝/ 겨울은 찾아와도/ 꿈쩍 않고 제 뿌리 더욱 깊이내리는/ 차라리 그 꽃으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 화두에/ 너무도 연기 같은 생으로/ 오색 영롱 몇 점의 단단한 말씀만 남긴 채/ 한사코 우리들 곁 놓아버린 지금/ 은은한 달빛 아래/ 먼 곳으로 떠남이 없는 그 들국화로/ 이렇게 태어났더라면
- 「만가」

시인은 삶의 서사에 주술을 건다. 그것은 시 갈래의 거대한 숭고함을 끌어낸다. 그 주술은 죽음을 상대로 한 것이며, 죽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귀환시키는 것이다. 또는 그들의 귀환을 믿게 하는 것이다. ‘들국화’를 통해서 보이는 삶의 의미는 죽은 사람들의 존재 그 자체다. 시인은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를 방문하게 한다. 원천적인 삶의 힘과 사람들의 연대는 ‘들국화’의 출몰로만 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출렁대다 서서히 분절되어 사라지면 우리는 한 사람의 영혼이 ‘허무’가 되어 날갯짓하는 걸 본다.

흐르는 바람을/ 턱을 괸 채 바라보다/ 저 흘러가는 강물 붙잡을 수 없어/ 몇몇 시들어 버린 풀들과 함께/ 세월을 바느질했다/ 켜켜이 쌓아 올린 역사들은/ 주검처럼 납작 엎드리어/ 언제 떠오를까/ 달빛만 몽롱히 쳐다보다가/ 묵직한 그림자 속으로 고여 버렸고/ 한 시절 마땅히 호령했을 큰 돌 하나/ 오직 한 자락의 허무만 남겨 놓고는/ 아득한 기억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 허무 하나 만들어 주었을/ 핏줄 몇몇들/ 가만히 그 뒤를 지켜보고 있다
- 「고인돌」

그의 시집에서 왼쪽 골목길에 얽혀 있는 유년시절과 삶의 자리를 마감한 고인돌의 세계는 원천적인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항상 불안한 토대 위에서도 결과적으로는 꿋꿋하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충만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詩낭송󰡕의 매력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방식에 있다. 그것은 두 번째 화두인 죽음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시인은 “그리울수록 지쳐 달아오르는/ 떠나보낼수록 미쳐 달려가고 싶은/ 저문 날의 모로 누운 그림자 하나”에 골몰한다(「그 해 끝자락에 서서」). 아름다운 엔딩이다. 고인돌은 유년시절을 배웅하고 문을 걸어 닫는다. 이상하지만 여기는 고인돌의 집도 아니고 유년시절의 집도 아니다. 하지만, 고인돌은 거기 남는다. 󰡔어느 詩낭송󰡕의 마지막 장면에는 수사도 없고 방점도 없다. 시인은 고인돌을 엔딩으로 선택함으로써, 그의 ‘회귀’에 관련한 모든 과거의 진실과 풍문을 빈칸으로 만든 뒤, 어떤 숭고한 보살핌의 행위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만을 남겨 둔다. 사람들간에 존재하는 연대의식에 대한,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죽음과 맺고 있는 전혀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관계에 대한 정직한 고백인 셈이다.
그의 시편들은 직설적인 제목과는 반대로 산들바람처럼 볼을 간질이는 로드무비다. 동행의 시간에 기약은 없다. 구구절절 설명은 없지만 눈길만은 따뜻하다. 고통의 환청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흐느끼며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 준다. 언뜻 건조한 시편들의 전경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이유는 무심한 표정으로 일상의 동작들을 정교하게 빚어내는 존재감 때문이 아닐까. 밥을 먹으며 일상을 견디며 사람들이 서로의 진심을 느릿느릿하게 털어놓는 대화를 미동도 없이 찍어낸 미장센은 일상에서 흔히 목격하는 광경임에도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삶에서 우리의 첫 만남에서부터 이별을 예감하도록 만드는 󰡔어느 詩낭송󰡕의 쓸쓸함은 시의 시원을 떠올리게 한다. 「고인돌」이 화면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순간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보다는 묘한 부드러움과 여운이 남는 멜로물로 여겨지는 순간이다.


3.
어떤 작가도 만족한 관능을 묘사하지는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러한 냉소적인 즐거움은, 어른이 되어 옛 전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과 닮았다. 이러한 느낌은 󰡔어느 詩낭송󰡕에서, 가슴 먹먹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읽는 김재홍의 시편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은 첫 시집의 결을 한층 도톰하게 살려 두 번째 시집을 마련하였다. 내면 성찰과 함께 삶의 문제에 구체적으로 천착하는 그의 어조는 오히려 시의 세부를 강화하는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시집 첫 부분에 나오는 골목길의 장면에서 시인의 시선은 거대하고도 황망한 세상의 결을 풀 숏으로 보여 주다가 시퀀스의 마지막에는 ‘틈’ 사이로 내민 고인돌을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왼쪽길이 그것을 맞잡는 클로즈업이 이어진다. 이처럼 시인은 클로즈업과 인서트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화자의 감정선을 오롯이 이어간다. 그는 삶의 정체성을 위해 욕망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詩낭송󰡕은 대규모 관현악보다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실내악 같다.    
그의 시집에서 설사 대사가 없더라도 누구 하나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시집에 등장하는 바람 한 줄기마저 모두 자기 몫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스펙터클이다. 그래서 󰡔어느 詩낭송󰡕은 매우 세심하게 엮은 한 편의 드라마같다.
시인은 ‘사람’의 시선으로 사람의 육체와 욕망과 슬픔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상처와 고통을 아는 자만이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의 이야기는 거기에 한치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어느 詩낭송󰡕은 우울함으로 가득 찬 시집이 아니어서, 그를 위해 준비된 위안이며 정신의 그믐을 지나 새벽을 맞이한 자를 위한 찬가이자 상처 입은 사람에게 바치는 애정 어린 입맞춤이 된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짐을 싼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한편으로 그 자리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서 󰡔어느 詩낭송󰡕에는 그가 가지 않은 ‘왼쪽’ 길과 그가 택한 길, 그 두 갈래의 길이 다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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