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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시집 『사라진 입들』
부산작가회의  (Homepage) 2008-08-16 10:02:13, 조회 : 4,378, 추천 : 888

바람이 건네는 인사
- 이영옥 시집 『사라진 입들』
                                                                  정   훈(문학평론가)


1.
지나간 사건들을 기막히게 조립하여 이들을 마침내 연극 같은 구성으로 절정에 치닫게 한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0시를 향하여』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허구 가운데서도 빼어난 짜임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비록 예술성 성취의 면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매길 수는 없더라도 ‘추리소설’이란 말이 주는 고약한 선입견을 지워버린다면, ‘사람’과 사람들이 엮어내는 ‘관계’와 사랑이 주는 ‘진실’의 세 지점에 깔린 어둑한 심연의 밀도를 새삼 느끼게 하였다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태의 뒷면이 어떤 계기로 해서 현상(現象)에 벼락같은 알몸으로 드러나고, 이런 필연의 내부 기제들 사이를 오고가는, 말 할 수는 없지만 특정한 장소나 때에 이르면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인 진실들이 숨어있는 내밀한 장소의 낯빛이 불러일으키는 충격이다. 작가는 이 모든 진실들과 사태들이 수렴ㆍ응결되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게 들끓던 긴장과 갈등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때를 ‘0시’라 하였다. 이때는 영문도 모른 채 먹먹하니 조성되어왔던 삶의 표면들이 그 원인을 들춰내어 맨살을 보여주는 지점이자 또 다시 기약 없는 세속의 걸음걸이를 내딛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잊어버리는 것은 현실의 조각들이 서로 얽혀있지 않은 채 별개의 원리로 나아간다는 우연의식이요, 새로 생기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의 밑변에도 만상(萬象)들이 지탱하고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영옥 시인이 낸 시집 『사라진 입들』(천년의 시작, 2007)을 이루는 시편들이 빛을 내는 무늬들에 깔린 지층에는 서로 다른 무게를 지녔지만 궁극에는 와글대며 시인의 감성에 달려드는 순간들이 산재해 있다.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나 늘 그 자리에 있어왔던 존재들이 내지르는 침묵의 비명을 시인이 알아채는 때가 바로 ‘감성의 0시’다. 이 환한 시각은 대체로 기억과, 이 기억을 둘러싼 사후(事後) 심상화의 욕구가 팽팽하게 날이 선 채로 맞선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에 뒤따라오는 것은 섣부른 형상화에 기댄 사태의 매듭이 아니라 또다시 언제라도 마주서게 될 존재들에 대한 기다림이다. 미처 끝내지 않은 채로 남겨진 소묘처럼, 우리는 다시금 생(生)의 둘레를 톡톡 건드리게 될 작은 입들의 속삭임을 들어줄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볼 때 이영옥 시인에게 시는 자기구원보다는 존재환기에 더욱 가깝다.

언니의 시어머니인 사돈의 부음을 받았다
언니가 부재중일 때
귀 어두운 사돈이 받으면
나는 큰소리로 통화하는 게 싫어
수화기를 놓아버리곤 했는데
말없이 끊어 버린 수십 통의 내 전화를 받던 그녀는
국화꽃 영정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문상을 끝내고 밤 기차로 돌아오는 차창
뒤로 밀려가는 플랫홈의 가로등 밑으로
하루살이들은 여전히 치열하고
세상은 변함없는 주제로 생의 아득함을 광고하는데
나는 문득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생의 몇 번째 역인지
고인에 대한 추모는 아닐 텐데
뜨거운 눈물이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방송
내가 전화를 끊어 버렸는데도
수화기를 들고 있었을 그녀의 캄캄했던 시간이
철거덕 브레이크를 잡으며 멈춰 선다
                              - 「밤 기차」

‘그녀의 캄캄했던 시간’이 ‘멈춰’ 서는 상상의 시각은, 시의 소재가 된 ‘사돈의 부음’이라는 실재 사건과 ‘밤 기차로 돌아오는 차창’에서 보게 되는 생의 고단함이 만나면서 그 깊이가 증폭된 때이다. 이 시는 존재의 어둑한 뒷면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을 어느 죽은 사람에 대한 회상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대개 연민이나 추억에 그칠 법한 차원과는 다른 지점에서 시인의 눈은 멈춰 있다. 정지이거나, 한 순간 자신을 꽉 붙들어 매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된 불가항력의 한 가운데에서 어둠을 맨몸으로 통째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흘러들어가는 곳은 어디인가.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묘하게 겹쳐 있는 시 「밤 기차」에서 시인은 지금 ‘문득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넌다는’ 낌새를 챔으로써 이에 대한 열쇠를 마련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어디로 닿을지도 모를 세상의 심연을 헤아리면서 문득 죽은 사람이 생전 여러 번에 걸쳐서 무심코 부딪쳤을 어둠의 숨소리를 시인은 환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은 이승을 등진다기보다는 날마다 감추어 있으면서도 컴컴하게 아가리를 벌리는 어둠 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생의 아득함’과는 또 다른 뜻에서 존재의 비밀스러운 너비에 해당한다. 시인은 ‘문득’이라는 부사어를 달았지만 실은 여전히 그의 몸에 달린 더듬이를 그날도 어김없이 곤두세웠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강’위에 서성이는 섬세한 눈동자는 사돈의 죽음과 삶의 현기증뿐만 아니라 그를 에워싼 사물들이 웅성대고 컴컴한 입을 여는 한때를 향해 애써 눈짓한다. 불안한 사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때인 ‘종착역에 도착’하는 지점에서 곧바로 그에게 ‘멈춰’ 서는 ‘캄캄했던 시간’은 시의 종결점이 앞으로 만나게 될 가늠할 수조차 없을 수많은 생의 조각들을 기다리는 암시다. 시인이 건너는 보이지 않는 강은 캄캄한 시간을 향한 여정이고 탐색이다. 그리고 날이 선 채로 다가오는 것은 존재의 그늘이고, 이 그늘을 주시하는 눈동자에 새겨 넣는 창백한 기억들이다.

2.
『사라진 입들』에는 이처럼 존재에 대한 시인의 눈길과 이에 감응하는 사물들의 내력이 가득하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마치 손가락마다 환한 등을 켠 채 세상을 더듬거리는 광경을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발광(發光)하는 촉수에 여지없이 걸려드는 것은 기실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고, 살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다해 그 형해(形骸)만 외로이 우뚝 선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은 슬픔이나 우울함에 닿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애써 나타내자면 메마르고 쓴 웃음들이 허공에 붙박여 있는 채로 부유하는 곳에서 새어나오는 빛바랜 인상을 닮았다. 시인은 일상에 숨겨진 이들의 낯빛을 불러낸다. 그러나 건조한 습자지 같은 표피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얼굴들은 한때 환한 몸짓으로 세상을 활보하던 건강한 살갗이었다. 시간은 언제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향하는 것이어서 뒤처져서 남겨지는 것들이 움켜쥔 시간의 파편에는 퇴락한 사물의 흔적이 고여 있기 마련이다. 시인은 이처럼 쇠락한 것들이 내쉬는 숨소리를 듣고, 응시하고, 속내를 들춰낸다. 이 어둠의 고고학자가 기록하는 언어에는 견뎌서 단단해진 고독이 들어 있다. 언젠가 선택받은 무리 가운데 하나였으나 지금은 지난날의 생기(生氣)를 잃어버린 것들이 내는 점멸의 순간을 낚아채는 시인의 감각에 이 고독은 윤곽을 드러낸다.

언니가 누에의 캄캄한 뱃속을 들여다보며 풀어내 희망과
그 작고 많은 입들을 어디로 갔을까
마른고치를 흔들어 귀에 대면
누군가 가만가만 흐느끼고 있다
생계의 등고선을 와삭거리며
종종걸음 치던
그 아득한 적막에 기대
                    - 「사라진 입들」 부분

빗줄기가 가로등 밑으로 뛰어내리고
그 아래 일가를 이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낡은 수첩을 펴고 오래된 안부를 뒤적인다
빈 대합실 유리창에 불빛이 그렁그렁 맺힌다
터미널을 휘감은 검은 치맛자락 밑으로
행선지 모를 바람이 끝없이 태어나고 있었다
                    - 「노포동 터미널」 부분

꽃이 열매에게 제 자리를 내어줘야 할 때
어디로 뛰어 내려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을 때
꽃이 고운 제 빛깔을 거두며 어두워지려할 때
옆에서 아무도 다독여 준 이가 없었구나
이쪽 철망에 걸러진 삶이
저쪽 철망으로 몸을 끼워보지만
세상은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이었다
                    - 「행방」 부분

가령 위 시들 가운데 ‘누에’(「사라진 입들」)와 ‘사람들’(「노포동 사람들」)과 ‘꽃잎’(「행방」) 따위들이 그렇다. 「사라진 입들」과 「행방」이 이들을 자연의 법칙에 귀속된 여린 존재들이 스러지는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면, 「노포동 터미널」은 삶의 주변부에 속한 사람들이 그려내는 쓸쓸한 몸의 윤곽에 초점이 가 있다. 서로 생존의 의미와 무게와 가치가 다르다 할지라도, 이들을 묶어낼 수 있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소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 소외가  ‘무엇으로부터’나 ‘어째서 생긴’ 소외인가 하는 것은 적어도 시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다시는 원래부터 터를 잡고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도, 그렇다고 또 다른 생성의 한복판에 자신들의 중심부를 세울 수도 없는 존재들이 움찔거리는 장면들이 시인의 눈에는 특별한 심상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는 사물의 가려진 면에 시선을 쏟는 시인의 섬세함이며 애틋한 마음이다. 그러나 촘촘히 박힌 그늘을 응시하면서 피워내는 허무감은 어쩔 것인가. 「사라진 입들」에서 누에를 키우며 생활의 빈틈을 메우려 했던 ‘언니’와 언니의 배려로 등록금을 마련한 ‘나’가 견뎌냈던 삶의 고난 못지않게 ‘누에’들이 거세당한 수많은 ‘입들’은 ‘아득한 적막’ 속으로 가라앉아 있다. 이들은 모두 ‘생계의 등고선’을 힘겹게 오르려했던 존재들로서, 단지 시의 화자가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유년의 소재 차원을 넘어서는 곳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데서 이 시의 참뜻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에 나오는 사람들인 자매(‘언니’와 ‘나’)와 ‘누에’가 이루었던 지난한 결속 공간으로부터 화자가 빠져 나온 시점에서 그 때를 돌이켜보는 일은, 잃어버린 ‘희망과/그 작고 많은 입들’에 대한 탐색과 결부되는 것으로써 어디론가 숨어버린(또는 가려진) 존재의 결락(缺落)에 시인의 의식을 가져다 놓는다. 한 세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났지만 결코 온전히 또 다시 이전과 다른 세상의 테두리로 진입하였다고 스스로 믿을 수 없는 마음의 스산함을 풍긴다. 「행방」에서 ‘철망’에 끼인 채로 주저하는 ‘꽃잎’의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다. 더욱이 ‘세상은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이어서 격리감은 증가한다. 이를 비극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비극’이 운명을 거스르는 행위를 보여줄수록 더욱 예정되어 있는 운명 속으로 귀착하는 모순을 품는 속성을 가진다면, 이영옥 시인이 토해 낸 시들은 아예 처음부터 불행의 싹을 감추되 마침내 느닷없이 시의 공간을 잠식하는 어둠의 진실을 내놓고야 만다. 시간과 사물들 사이에 가로놓인 휑한 내막들의 표정을 보자. 연원도 희미하고 방향도 없이 생겨났다 꽁무니를 감춰버리는 그 무엇은 마치 ‘행선지 모를 바람’(「노포동 터미널」)처럼 쓸쓸하다. 그의 시들에 보이는 이러한 정조를 ‘보이지 않는 의식의 질서’와 ‘드러난 혼돈의 차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두 편의 시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어머니는 유괴해 온 검은 밤을 펴고
펄럭펄럭 촛불을 밝혔다
                       - 「철길」부분

누구에게나 추억은 너무 가깝거나 지나치게 멀어 보였다
내가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위협하는 시늉을 하자
그 자리에 덜컥 선 채 초점 없는 시선을 막막하게 던졌다
                      - 「늙은 개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부분

유년의 기억을 시로 재구성해서 형상화 한 「철길」과 길에서 마주 친 개를 소재로 한 「늙은 개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에서 그런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와 가깝거나 먼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이지, 시인이 시 전편을 통해서 아우르고 있는, 감춤과 드러냄의 형식은 그의 시들이 대체로 깊이 감추어진 시ㆍ공간의 외부로 발현하는 표정과 버무려지는 심상 작용에서 형성된다. 「철길」의 ‘펄럭펄럭’과 「늙은 개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의 ‘막막하게’와 같은 부사의 활용은 그러한 형식미를 가능하게 하는 준별점이다. 이 두 말은 화자가 기억하고 유추해 낸 두 대상(유년의 기억과 늙은 개의 표정)이 가득 안고 있는 ‘진실’이 실상 어떻게 왜곡되어 시의 화자의 눈에 비추는지 잘 보여준다. 어린 나와 ‘어머니’ 사이에 형성된 ‘검은 밤’이라는 이미지와, ‘늙은 개’의 몸에 실제로 각인된 ‘추억’은,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굴절되어 그 어둠의 진실이 일순 가려지거나 ‘초점없는 시선’으로 불투명한 채 화자에게 다가온다. 화자가 본 ‘늙은 개’의 시선은 분명 ‘늙은 개’가 오래 전 건강하게 뛰어다녔을 싱싱한 ‘추억’이 잔인한 시간의 더께로 덧칠된 망각의 선(線)이 된다. 이는 모든 지난 일이 ‘막막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화자의 의식이 투영된 것이다.
현실이 묘연한 것은 현실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주체를 구성해 내는 자기-역사에 극심한 균열이 생겼을 때 일어난다. 단단하지만 컴컴한 지반을 딛고 선 사람에게 불어 닥치는 바람 같은 환영들은 시인에게 불안한 진실로 다가온다.

3.
존재환기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이영옥 시인의 시편들은 밝음 속에 가라앉은 어두움과 그늘을 되살리는 데 매달린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시인이 지향하는 ‘예술적 진실’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성급하고 단정 짓는 말투를 통해 때로는 번뜩이는 세상사의 통찰을 통해 그려내는 언어는 희뿌연 추억들처럼 마음을 저미게 한다. 그는 존재를 규명하는 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사실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는 역사가도 아니다. 하지만 존재와 사실에 놓인 틈을 넓혀서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망각해버린 ‘관계’를 말로써 되비치는 시인으로 서 있다. 이 점은 모든 예술가들이 짊어진 숙명이다. 알게 모르게 숨겨진 것들과 교통하는 자로서, 거듭하는 삶의 굴레 가운데 박혀 있는 은밀한 사연들이 내미는 손을 주저 없이 받는 사람인 것이다. 시 「입맞춤」은 이런 황홀한 상응성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그대와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한다면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수 천 개의 바람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빛나는 계절 뒤에 떼로 몰려오는 너의 허전한 바람을 마중해주는 일이며 빈 가지에 단 한 잎 남아 바르르 떠는 내 마른 울음에 그대가 귀를 대보는 일이다 서로의 늑골 사이에서 적막하게 웅성거리고 있던 외로움을 꼼꼼하게 만져주는 일이며 서로의 텅 빈 마음처럼 외골수로 남아 있던 뭉근한 붉은 살점 한 덩이를 기꺼이 내밀어 보는 일이고 혀 밑에 감춰둔 다른 서러움을 기꺼이 맛보는 일이다 맑은 눈물이 스민 내가 발뒤꿈치 들고 오래 흔들리고 있었던 그대 뜨거운 삶의 중심부를 가만히 들어 올려주는 일이다
                                                                              - 「입맞춤」

이 시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 황홀에 빠지게 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입맞춤(The Kiss)」을 떠올린다. 입을 맞추는 행위는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입’과 ‘혀’의 기관으로, 발화를 통해서 할 수 없었고 하지도 못했던 농밀한 말들을 대상에 전하는 기능을 한다. 이때의 ‘말’은 언어뿐만 아니라 느낌이나 지향성 같은, 행위로 나타내기 곤란한 감각ㆍ의지 따위를 몸으로 적극 보여주는 것들까지 포함한다. 이른바 사랑을 주고받는 여러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써 갖는 기능에다가 두 존재들 사이에 깜깜하게 묻혀 있는 무의식의 앙금들을 거리낌 없이 내주고 건네받는 교환체계인 것이다. 이는 ‘너의 허전한 바람을 마중해주는 일이며’와 이 구절 다음에 이어지는 ‘내 마른 울음에 그대가 귀를 대보는 일이다’의 구절에서 보는 것처럼, 입 맞추는 두 대상 사이의 주ㆍ객이 뒤섞이고 혼효되는 부분과 관계가 깊다. 여기서 또한 ‘너의 허전한 바람은’ 시 앞머리에 제시한 ‘내 안에서 일어난 수 천 개의 바람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에서 나온 바와 같이 화자 속에 회오리치는 수천의 바람에 휘말려서 그야말로 일대 카오스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혼돈은 수천  수만의 바람이 웅성대고 울부짖는 소리를 아무 제약 없이 세상 밖으로 내놓는 일이며 제 속에 요동치는 것들을 내버려두어 중력장(重力場)에서 맘껏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방심(放心)들은 시를 시작하는 구절인 ‘그대와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한다면’이라는 가정(假定)에 놓일 때만 일어난다.
입은 구멍이고 말들(言語)이 지나다니는 길이다. 서로 입을 맞춤으로써 품에 가득 고인 진실들이 되살아난다. 잠자고 있던 비명(悲鳴)들이 깨어나고 ‘혀 밑에 감춰둔 다른 서러움’들이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태들은 질서와 정돈을 가져다주는 안정된 의식 공간을 지향하지 않는다. ‘뜨거운 삶의 중심부’를 ‘들어 올려’ 그 밑바닥에 모여 있는 폐습과 녹슨 공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해체 해 버린다. 이것은 방종이 아니라 자유다. 묵은 습속을 떨쳐내고 새로운 생성의 한복판으로 솟구치려는 의지다. 이런 화자의 소망과 욕구는, 대상과 혼연일치하는 상응성이 일어나기 위한 계기로서 상상의 비등점에 다다르기 전에는 늘 숨 죽여 있다. 이렇게 볼 때 ‘수 천 개의 바람소리’는 열려 있는 침묵이자 닫혀 있는 함성이다.
『사라진 입들』에 실린 시편들 곳곳에 불어오는 ‘바람’들은 그 뿌리가 확실하지 않은 채로 시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환기한다. 허무의 냄새를 짙게 풍기면서 아울러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무한자유를 떠올린다. 존재의 배면에 달라붙은 어둠이 제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이자 그늘의 테두리를 끊임없이 연장하고 철저한 소외로 구심(求心)하려는 쓸쓸한 상징이다. 명백하게 숨어있는 진실이자 표면으로 나타난 혼돈이다. 이 기괴한 이중성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원인자(原因者)가 되지는 않았을까.

바람의 일행들이 절뚝거리며 지나갔다
술 취한 아버지가 삼나무 옆구리에 자전거를 박았다
큰 언니가 가방을 꾸려 객지로 떠나던 날
내 안에서 우는 마른 바람 소리를 들었다
                                - 「삼나무 떼」 부분

바람이 삶 전체를 뒤로 밀었다가 제자리에 세우면
강바닥에는 어지러운 손금들이 자꾸 태어났다
모두가 하룻밤만 자고나면 떠날 객식구처럼
바람이 뱉어낸 싸락눈처럼 서늘하게 집안을 떠돌았고
                                - 「바람 아래 붉은 강」 부분

인용한 시들에서 ‘바람’은 운명처럼 ‘삶 전체를’ 뒤흔드는 존재이면서 삶 자체를 지탱해주고 이어나가는 주요 성분이다. ‘바람의 일행’에서 보듯, 이들이 떠맡은 삶의 길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모두들 ‘객지로 떠나’려는 ‘객식구처럼’ 펄럭거린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몸에서는 ‘마른 바람 소리’가 울부짖는다. 자기 체험의 원점은 집이고 식구다. 뚜렷한 방향도 없이 시인 둘레를 어른거리는 피붙이들이 환영처럼 흘러가버린 곳에 남겨진 것은 바람이 토해 낸 고독이다. 시인은 이 고독한 자리를 상념한다. 바람의 꽁무니가 배실 웃으며 기웃거리는 황량한 뜰엔 지워도 되살아나는 기억들이 모여들고 ‘사라진 입들’(「사라진 입들」)이 손짓을 한다. 원(原) 기억을 잡아채서 시인에게 불쑥 내미는 바람의 풍경 속으로 시인은 서슴없이 걸어 들어간다.

4.
그는 무엇을 보았나. 그리고 어떤 말을 하였나. 시집 『사라진 입들』을 읽은 독자라면 응당 물어봐야 하는 것들이다. 마치 ‘잘 빚은 항아리’를 완상하듯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은 까닭이 단지 말을 다듬고 소재를 간추려 뛰어난 형상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의 오솔길을 더듬다 급격한 비탈을 만나 허둥대기가 일쑤인 여느 시인의 시들과는 달리 이영옥 시인의 시들은 시상(詩想)의 높낮이가 부드러워 헤맬 염려가 없다. 게다가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 이야기 또한 그 다음 일을 궁금하게 여기게끔 하는 서사의 흡인력을 갖추었다. 서사성의 획득은 ‘서정시’를 구성하는 수의(遂意) 요소에 지나지 않으나 삶의 순간의 진실을 얼마나 포착하느냐가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열쇠가 되는 만큼, 시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시의적절한 이야기성의 배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화자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이모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막내 이모의 메마른 울음으로 인화(印畵)한 「형산강」, 한 노인의 죽음과 이를 위로하는 듯 하는 이팝나무 꽃잎들의 낙하를 감동 있게 형상화 한 「이팝나무 고봉밥」, 좌절과 절망에서 자신을 곧추세우고자 하는 사내의 고독을 담은 「돛배 제작소」와 같은 시편들이 시인이 이룩해 낸 서사성의 결실이다. 그런데 가족이나 그 밖의 허구 인물이 지나온 생활의 편린을 보여주는 이런 시들에서, 나는 안으로만 웅크려드는 인간 실존의 허약함에 주목한다. 시의 소재로 나오는 인물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감싸 쥐고 색칠하는 시인의 눈길이 그렇다. 사람살이에서 비롯하는 ‘순간의 진실’은 시에서 알맹이처럼 단단히 뭉쳐 있되, 언제든 어루만지고 두고두고 되새겨볼 수 있는 힘을 내보여야 한다. 이는 시의 부드러움이고 강함이다. 독자들에게 울컥한 심사를 느끼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어야 한다.

간간한 어둠에 절여진 한 사내가
심해의 물고기처럼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담배 연기를 뽀글거리며 희망을 조합했다
                            - 「부산 여인숙 3호방」 부분

겨울 철새들이 환하고 고독한 문장을
삐뚤삐뚤 베끼며 길을 떠난다
                            - 「달의 자서전」 부분

새떼가 석양을 꾹 찍고 빠른 등기 우편으로 날아갔다
                            - 「낮달이 꺼내는 새떼 - 흰 접시꽃」 부분

위 시들 가운데 먼저 「부산 여인숙 3호방」을 보자. 도시의 모서리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을 멈’춘 사내가 ‘희망을 조합’하는 장면이다. 여러 시인들이 다루어왔던 소재인, ‘밑바닥 인생’들의 피로한 일상과 쓸쓸한 최후를 감각 있는 언어로 나타낸다. 이런 소재는 자칫하면 재기 발랄한 말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흔해 빠진 ‘스토리’를 재생하는 약점이 있다. 시에서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의 특징은 늘 새롭고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정작 ‘할말’은 미리 정해져 있고 껍데기만 요란스럽게 변주하는 데 있다. 이럴 때 도시빈민이 겪는 힘들고 괴로운 세상살이에서 ‘희망’이란 낱말이 안겨다주는 중층의미의 폭로가 막혀버리고 다만 세상의 비합리ㆍ비인간화에 희생한 한 남자의 파국만을 형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친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에 뒤이어 세상을 더욱 미묘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비껴가는 마당으로 보아 세심한 인식으로 이끌기보다 사내의 비극 같은 종말을 톡톡 튀는 말들로 압축한다. 부조리한 세상이 독특한 이미지로 단순해지고 삶의 ‘순간의 진실’이 정전기 같은 감각으로 대체된다. 이런 점에 비추에 이 시에 나타난 문제점은 시의 서정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달의 자서전」과 「낮달이 꺼내는 새떼」에서 인용한 구절이 가진 문제성과 연결된다. 사회 실상의 빈약한 인식은 서정의 ‘박제(剝製)’와 통한다.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 ‘예쁜’ 시 구절은 이 두 시들이 내보인 서정의 참맛을 잃게 하고 돌올한 무늬로만 남게 한다. 한 두 구절에서 느끼는 그림 같은 심상이 시 전체가 간직한 언어들의 산뜻한 정조를 뒷받침하지 않고 흠으로 남을 때 ‘작위성’이 전혀 없었다고 흔쾌히 말하지는 못하리라. 지난 날 이미지스트들이 시를 쓸 때는 시사(詩史) 의미로 보나 문단에 준 충격으로 보나 분명 신선한 행위요 의식(儀式)이었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스타일과 기법도 궁극에는 시인이 가진 세계관ㆍ사상에 영향을 받는 바가 크고, 또한 그 역도 필요조건으로 가늠된다.
이런 몇 가지를 문제 삼는 까닭은, 첫 시집이 시인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 세계를 형성하는 최초의 인식 틀인 것과 함께 좀 더 간추리거나 심화해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여럿 뒤엉켜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입들』에 나오는 첫 시 「철길」에서부터 마지막을 꾸민 「밤 기차」까지 가는 길은 때로는 여위기만 하는 존재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때로는 황홀한 말(言語)들을 잡아타고 허공을 헤집는 듯해서 붕 뜬 마음을 간신히 달래는 여정이었다.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존재들이 시인의 눈에 사로잡히는 광경을 바라보다 문득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떠올랐다. 이 작품에서 사실 ‘0시’는 완전범죄를 노린 살인자가 그가 세운 치밀한 계획을 티 하나 없이 짜 맞추어 실행에 옮기는 시각을 상징한다. 모든 사건과 사실들이 그 시각에 맞추어 점점 다가오고 마침내 모든 정황들이 소실점에 다다르는 때 ‘진실’이 밝혀진다. 모든 살인은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어 왔고 진행해 왔던 일들의 종결이라는 영국 작가의 말을 뒤집어, 오랜 시 쓰기 훈련과 웅숭깊은 생각으로 정련한 첫 시집이 밝힌 ‘감성의 0시’는 앞으로 보여 줄 이영옥 시 시세계의 너른 터가 아닐까. 거기서 쏟아져 나올 그늘 깊은 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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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옥 시집 『사라진 입들』   부산작가회의 2008/08/16 888 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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