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작가상 시 부문 수상자(2025년)
페이지 정보
- 수상작품
- 신정민/ 『너무 많은 창문들』
- 심사위원명
- 조향미, 허정
- 등록일
- 25-12-02
본문
* 약력
전북 전주 출생
등단-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저서- 시집: 『너무 많은 창문들』 외 6권
수상- 최계락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심사평
2025년도 부산작가상 시 부문 대상 시집 9권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아래 5권의 시집을 주목하였다.
배옥주 시인의 『리을리을』은 ‘생의 통증’과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이 길항하면서 서로를 조율해가는 풍경을 그린다. 시인은 몸의 통증을 전 방위적으로 포착하면서 진저리치게 앓고 있으며, 이 통증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리을리을」에 나타난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과 유려함은 통증 속에서도 고통 이후를 꿈꾸며 삶을 밀고나가는 고투의 자세를 견지했던 시인이 가닿은 한 경지로 보이기에 소중하게 읽힌다.
이은주 시인의 『초록, 눈부신 소란』은 전쟁‧폭력‧가난‧기술문명‧차별 등이 초래한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초록’으로 대표된 생태주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생명‧교감‧만남‧공존으로 충만한 세계로 바꾸어가려는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난 시집이다.
이소회 시인의 『오오』는 시가 시인의 순간적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장르답게 불쑥 솟구치는 찰라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낯선 자아와 대면하면서 자신을 규정짓는 정체된 틀을 깨뜨리는 해체의 정신, 변화‧생성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긴장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김성배 시인의 『내일을 걷는다』는 삶의 체험을 깊이 있게 형상화하여 먹먹한 감동을 전달한다. 소박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체험을 경시하고 지나치게 현란한 기교에 매달리는 요즘의 시 쓰기 경향에 경종을 울린다는 측면에서 무시 못 할 무게감을 가진 시집이다.
신정민의 『너무 많은 창문들』은 시인의 존재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통해 숨 막히는 현실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변전시켜 수용해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논의 끝에 신정민 시인의 시집을 2025년 부산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물살 거슬러 오르는 것 아니라 물결 다치지 않게 비켜 주는 거 ― 「찌」 부분
신정민 시인은 시인이 ‘기다리는 존재’이며 ‘비켜서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용 구절처럼 목적 성취를 위해 아등거리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향해 오는 것들이 다치지 않고 올 수 있도록 비켜나고 물러서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비켜남은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이 가운데 무엇인가 도래한다. 숨 막히는 현실의 질서 속에서는 사라지는 것, 척도에 얽매이지 않는 것,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현실의 생산물과는 다른 것들이 도래한다. 그래서 이 수동성은 열림과도 같다. 시인은 그 도래를 기다리는 자이며 그렇게 도래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오리털 잠바 속에 빽빽하게 감금된 깃털(「변곡」)처럼, 현실은 주체들을 숨 막히게 가두고 있다. 현실은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여 “일정한 순서 일정한 배열로 이어”져 있으며, “질서”의 연속으로 짜여 있다(「나는 왜 찬란한 봄의 꽃가루 알러지가 없는가」). 여기서 시인은 살아남을 것을 다짐하면서(「있다, 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타인과 함께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오리털 잠바의 깃털처럼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빠져나오려 한다. 그리고 거기서 쉽사리 재현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하려 한다. ‘개가 짖으면 한여름 새벽에도 눈이 내린다’는 믿기지 않는 환상을 펼쳐 보이고(「있는 듯 없는 듯」), 경로를 위반하여 잘못 접어든 길에서 우연히 대면하게 된 아름다움을 잡아내기도 한다(「혼선」). 일정한 순서로 배열되는 일반 언어의 법칙에 반대하며, 자유연상처럼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이 빠져나”(「변복」)오는 것을 주목하면서 자발적으로 “말더듬이”가 되려고 한다(「나는 왜 찬란한 봄의 꽃가루 알러지가 없는가」). 말더듬이 되기는 시집에서 낯선 문체를 통해 구체화되는데, 낯선 문체는 현실의 법칙이나 질서로 환원되는 것들만 인정하는 정형화된 재현체계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거기서 사라지는 것을 포착해내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시인은 고통받는 타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힘든 현실을 견딘다. 가령, 「지나치게 화려한 어둠 속에서」에는 유사성장애(선택장애)라는 낯선 문체를 통해 타자와 소통하는 순간이 펼쳐진다. 어항 속에서 죽은 물고기를 꺼내야 하는데 “소녀”가 “뜰채로 건져”진다. 물고기를 묻어야 하는데 물고기를 걱정하던 “물”이 “묻”힌다. 이 전도된 표현으로 인해 소녀와 물,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화자는 물고기의 죽음에 관여하게 된다. 죽음을 각자의 것으로 고립시키는 분리의 사고방식은 무너지고 그 슬픔을 공유하려는 3중의 애도(물의 애도, 소녀의 애도, 화자의 애도)가 생겨난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의 태도는 엄격하면서도 진지하다. 시인은 타자의 이질성을 철저히 인정하고 있으며, 타자와 손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섣부른 환상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타자에게 다가가고자 한다(「PSO J 318.5-22」, 「물 생활」).
이상과 같이 시인은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고 타자와 함께 하면서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시인으로서의 삶이 있기에 시인은 “생”을 “견딜 만”한 것이자 살아갈 만한 것으로 긍정한다(「수드라). 시집에 나타난 관찰과 탐구의 태도 역시 삶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갈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여름을 부르는 관찰」, 「옆」). 이렇게 『너무 많은 창문들』은 시인의 존재론에 대한 탐색을 통해 숨 막히는 현실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바꾸어 사유해낸 역작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수상 소감
어제 저녁 한 후배 시인이 전화를 걸어와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에서 ‘거처없이’란 시어를 짚으며, 할 말을 좀 더 하지 왜 겉돌았냐고 물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저를 혼내실 때 무심히 쓰셨던 말인데, 어른이 되고 나서 그 말이 가끔 떠올라 저를 슬프게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숱한 저녁들, 집으로 가면서도 집이 없다는 이상한 느낌들. 그 말이 핏속에 흐르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떠돌았던 이력들의 이유도 그 말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시를 쓰면서 거처없이 헤맨 것만 같았는데, 잘 버텼다 수고했다 손잡아주신 것 같아 힘이 다시 생깁니다. 무엇보다 뽑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타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어떻게 화해하며 움직이는가 고민하는 시인이 되도록 애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