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 저자/책명
- 남송우/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
- 출판사/년도
- 역락/25. 12.
본문
비평은 태도다 – 남송우의 김윤식 읽기와 비평적 기준의 윤리
남송우의 『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는 김윤식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다시 불러내지만, 그를 거창한 전기의 주인공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를 말할 수 있다”는 전기적 관점 자체에 의문을 던지며, 부분과 단면을 통해 한 비평가의 삶을 더 섬세하게 이해하려 한다. 책 제목의 ‘편모(片貌)’란 단어가 시사하듯 남송우는 일부만을 보여주기 위해 전체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섣불리 말하는 순간 놓치기 쉬운 복잡한 결을 지키기 위해 ‘부분으로부터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 절제된 태도는 김윤식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적합한 접근이기도 하다. 그의 비평은 방대하고, 감정과 사유의 궤도는 한 시대를 압도할 정도로 넓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남송우는 사건이나 업적을 차례로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자료 속에 흩어진 작은 장면들을 모으고, 그 장면들이 비평가 김윤식의 내면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만들어냈는지를 조용히 추적한다. 언론 기사, 제자들의 기억, 고별 강연 등 서로 다른 기록들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합쳐지지 않는다. 남송우는 그 각각의 장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타자의 언어에 응답했는가’, ‘문학 앞에서 어떤 태도를 유지했는가’를 읽어낸다. 전체의 그림은 바로 이런 작은 단면들의 결을 따라갈 때 비로소 보인다.
특히 남송우는 김윤식이 말했던 ‘기준’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해석한다. 김윤식에게 기준은 시대의 유행이나 학계의 권위가 아니라 텍스트가 보내오는 요청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감각이었다. 그는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언어가 요구하는 책임을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어온 실천적 존재였다. 이 반복되는 실천 - 재능보다 노력, 영감보다 책임, 생산성보다 자기수양 - 이야말로 김윤식 비평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윤리라는 것이 남송우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분명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편모’라는 방식은 인물의 복합성을 잘 지켜내지만 어떤 단면을 선택하고 해석할지는 결국 연구자의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 독자로서는 그 선택의 기준이 다소 불투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김윤식의 윤리적 기준이 시대의 제도적 환경, 문학장의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윤식 비평의 영향력과 모순을 함께 살피는 시도는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 책 전체에 흐르는 남송우의 깊은 애정은 김윤식의 취약성이나 실패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비평 전통을 복원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만큼 선택된 장면들이 긍정적 이미지에 집중되는 인상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송우는 김윤식이라는 비평가를 단순한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문학비평사가 공유해온 태도와 윤리의 구조 속에 다시 위치시킨다. 비평은 해석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태도이며, 비평가의 삶을 이루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내적 기준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만든다. 김윤식의 ‘편모’를 더듬는 과정은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우리는 무엇에 응답하며 글을 쓰는가?”, “비평은 어떤 삶의 방식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남송우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단단하다.
비평가의 삶은 결국 태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가 평생 지켜온 기준 속에서 드러난다.『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는 한 시대 비평가의 초상을 넘어, 오늘 글을 쓰고 읽고 가르치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응답하며 글을 쓰고 있는가?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책 소개
김윤식! 아득한 이름이다. 지상에서 사라진 시간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다. 굳은살이 뼈처럼 굳도록 글쓰기와 더불어 맺어온 이력의 시간을 헤아림에서 비롯되는 아득함이다. 이 아득함이 산처럼 높은 책의 산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아득함은 바로 전율로 다가온다. 육체를 갈아서 정신의 산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득함 속에는 인간의 고통, 아픔, 운명적 실존의 체취가 묻어난다. 이런 연유로 김윤식이 형성해놓은 문학의 산을 오르는 길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그 산을 이룬 산자락에서만 서성거리는 형국이다. 김윤식이 일구어 놓은 한국문학이란 산 속에 어떤 나무들이 심겨져서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그 무리가 하나의 숲으로 형성되었는지를 헤아리는 작업은 한국문학의 산을 찾는 자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김윤식의 초상화를 그린 글들을 모아 그에 대한 면모를 우선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먼저 마련하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김윤식 사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김윤식 문학 전반에 걸친 다양한 논의들을 연구논문들을 중심으로 살피는 일종의 김윤식 연구사를 정리하였다. 3부는 필자가 그 동안 김윤식 문학에 대해 논의했던 글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필자의 글 역시 김윤식의 문학의 산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단편적인 시각이란 점에서 한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4부는 필자가 김윤식 교수가 출간한 저서들을 두고 서로 나눈 대화를 묶어 놓은 것이다. 단순한 서평을 넘어 대화적 비평으로 접근한 김윤식 책 읽기는 나름의 또 다른 모습을 간파할 수 있는 오솔길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 5부는 필자와 김윤식 교수와의 개인적 인연을 풀어놓은 어쩌면 사적인 공간이다. 이 장을 마련한 것은 김윤식이 이룬 문학의 산을 제대로 섭렵하려면 그의 인간에 대한 내면 세계의 속살도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5부로 구성했지만, 말 그대로 김윤식의 전모를 읽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한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책 제목은 달아야 하기에 『김윤식 비평가의 편모를 찾아서』라고 명명했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74545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