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 저자/책명
- 정미형/검은 밤, 영도
- 출판사/년도
- 알렙/25. 12.
본문
책 소개
노선을 모르는 오래된 버스가 와서 어느 시간과 공간으로 나를 던져놓는 것,
소설 속 장소는 낯설고 새로운 공간 속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래된 기억의 공간에서 흩뿌려진 물방울들
현재라는 시간에 잉크처럼 스미는 이야기
정미형 소설가가 세 번째 소설집 『검은 밤, 영도』를 펴냈다. 2009년 봄 상반기 《한국소설》 신인상에 단편 「단신의 일곱 개의 가방」이 당선되며 등단한 정미형 소설가는 ‘제11회 현진건문학상’, ‘제25회 부산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검은 밤, 영도』는 “이중 혹은 다중시점으로 서사를 끌어가면서도 매끈하게 마무리했고, 세대를 달리하는 가족 구성원의 삶에 대한 정념과 의식을 인간학적 깊이로 이해했다”고 평가받은 「남원 어딘가에」를 포함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집필한 7편의 단편이 담겼다. 실제 지명인 영도, 남원, 언양의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잊힌 시간에서 다시금 찬란하고 조용히 비추는 삶의 뒷모습을 담아내는 정미형 소설가 특유의 시선이 빛을 발한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위로가 독자들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소설들이다.
정미형 소설가는 이번 소설집을 “가방을 끌고 어딘가로 떠나면서 쓴 여행기”라고 표현한다. 노선을 모르는 오래된 버스를 타고 불시착한 낯선 공간에서, 독자들은 예기치 않은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여행기를 통해 소설이 주는 정념과 관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번 소설집은 ‘시간’이라는 열쇠로 과거의 공간을 현재로 불러온다. 소설 속 영도, 남원, 언양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실제와 상상의 이중 세계로 변모한다. 발문을 쓴 배이유 소설가는 “흰 천에 문장이라는 바늘로 촘촘히 수를 놓”는 “세밀한 자수 공예가의 시선”이라며, 정미형 소설가가 가진 섬세하고 다중적인 시선을 짚어냈다. 먼지처럼 바스러지는 삶과 희미한 유령 같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생에 새겨진 지문을 질긴 의지로 읽는다. 오래된 기억의 공간에서 흩뿌려진 물방울들이 현재라는 시간에 잉크처럼 번지며 스며드는 방식, 이것이 정미형 소설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정서는 ‘검은 밤’ 같은 어둠에서도 기어이 찾아내는 은은한 온기다. 표제작 「검은 밤, 영도」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 가난한 젊은 새댁에게 위안이 되어 준 이웃집의 비싼 전깃불처럼, 작가는 고단한 삶의 두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을 포착한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서거나 지나간 기억을 더듬는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막다른 길의 끝에서 “잘못 도착했다고 여겨지던 길이 어쩌면 진짜 찾던 길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희망을 발견한다. 죽은 자로서 생을 바라보는 연극 속 ‘에밀리의 시선’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나가 버린 일상의 찬란함을 뒤늦게, 그러나 사무치게 깨닫는다. 정미형 소설가는 그 회한과 그리움의 정서를 중심으로 단단한 위안을 건넨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40838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