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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정보

저자/책명
박향/희주
출판사/년도
강/25. 6. 27.

본문



『희주』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세 명의 ‘희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1인칭 화자 희주를 통해 유방암 진단을 받은 중년 여성의 투병기를 사실적으로 전한다. 질병을 진단받는 순간, 그리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고통, 그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부대끼고 무너져가는 내면 풍경이 면밀하게 그려진다.

일상은 나를 간단하게 배반했다. 삶의 질은 떨어졌다. 자주 화장실에 드나들어야 하고, 오래 앉아 있어야 소변이 겨우 나왔다. 빈속이나 밥을 먹은 후나 상관없이 오심을 느끼고,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왔으며,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손톱과 발톱이 시커멓게 변하고 급기야 덜렁거리는 것도 생겼다. 그러니까 온통 발진 같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기름 속에 떨어뜨린 물처럼 튀어 오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꽃이 핀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아프다고, 걷지 못하겠다고, 밥을 못 먹겠다고.

마취약이 몸속에 들어갈 때의 선뜩한 느낌에서부터 주렁주렁 달린 갖가지 종류의 수액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술 후 통증, 얼굴이 퉁퉁 부으며 끊임없이 시달리는 구토와 음식에 대한 혐오증, ‘온몸에 젖은 이불을 둘러씌운 듯한’ 나른함과 무력감, 두통과 불면…… 머리카락과 눈썹을 비롯해 온몸의 털이란 털이 죄다 빠져 나가는가 하면 마침내는 발톱마저 덜렁거리며 떨어져 나간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이 모든 상황과 증상을 치밀하게 재현해낸다.
투병기가 소설의 겉껍질이라면, 이 소설의 비의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기억의 지층에 파묻힌 상처를 추적하는 시간 여행이 이 소설의 속살이다. 호미로 땅을 조금씩 긁어내고 솔로 흙가루를 털어내는 집요한 작업 끝에 묻혀 있던 고대의 토기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작가는 조금씩 조금씩 상처의 단서를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입원한 화자는 어느 밤 환청 같은 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화자와 같은 이름의 ‘희주’이다. 그 아이는 화자가 기억의 심층에 파묻어버린 어린 시절의 상처를 환기시키고 헤집는다. 두 살짜리 희주는 화자 희주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친언니이다. ‘희주’와 ‘희주’의 만남 속에서 묻혀 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희주’도 나온다. 화자의 딸인 유미다. 화자의 엄마는 딸에게 냉담했던 것과는 달리 외손녀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엄마의 고통 속에선 외손녀가 첫딸 ‘희주’가 되었다. 유미는 엄마를 건너뛰어 할머니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듯 보였지만, 자신을 늘 ‘희주’로 부르고 죽은 딸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손녀에게서 찾는 할머니에게서 역시 상처를 입었음을 고백한다. 다르게 보면 이 소설은 ‘희주’라는 이름을 고리 삼은 모녀 삼대의 가족 서사이기도 하다. 미술을 전공한 유미는 ‘희주야!’라는 이름의 행위미술전을 열어 할머니에게서 입은 유년기의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 치유에 나선다. 그것은 상처 입은 엄마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씻김굿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자는 언니 ‘희주’와 딸 ‘희주’의 도움으로 서서히 유년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이 소설은 화자 자신과 엄마의 대립과 갈등, 딸과의 간극, 남편과의 이혼, 시력을 잃어가는 친구의 아픔 등 여러 가지 상처를 밀도 있게 교직하면서 우리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남루하고도 아픈 삶의 대목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단추를 꿰듯 하나씩 하나씩 정면에서 응시하고, 성찰하며 화해와 용서의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끝내는 치유와 해방의 길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상처와 치유, 굴레와 해방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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