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 저자/책명
- 김수우 역/나의 물맷돌은 다윗의 그것이니
- 출판사/년도
- 글누림/2025. 10.
본문
책 소개
호세 마르티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지성이다. 모든 쿠바인이 사도로 일컫는 그는 라틴 모데르니스모 문학의 주역이며, 생애 전체를 통해 ‘궁극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숭고함의 극치로 이루어냈다. “억압받고 있는 국가에서 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전사가 되는 것뿐이다.”라는 발언은 그가 품은 이상주의와 함께 진정한 문학이란 무엇인지, 문학의 책무가 어떤 것인지를 투명하게 일깨운다. 때문에 그의 언어와 사상은 우리 삶을 승화시키는 힘이 있다. 해방을 위한 모든 요소들이 들어 있는 심오한 그의 시적 사유와 실천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사망 100주년이 되는 1995년 유네스코는 ‘호세 마르티 국제상’을 제정했고, 평생 디아스포라로 살며 길 위에서 쓴 시와 산문, 연설, 번역 등 그가 남긴 모든 기록들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르티는 1953년 아바나 뒷골목에서 가난한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후반은 다른 라틴 국가들이 일찍 차례로 독립한 데 비해, 쿠바는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 있는 식민지 현실이었다. 빈민가에서 심약한 소년으로 성장하면서 억압과 소외, 타자에 대한 고통에 일찍 눈을 떴다. 이는 쿠바의 대자연과 함께 마르티 전 생애에 걸친 주제가 되고, 자유와 정의에 대한 열망은 생명을 제시하는 뿌리가 되었다.
자연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그는 억압의 모든 형태에 저항했고 인간과 세계의 가장 자연적인 상태를 꿈꾸었다. 그의 문학적 소명과 정치적 행동은 국가 독립이라는 굽힐 수 없는 신념, 민중의 자유와 평등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헌신했다. 일찍 저항정신을 가졌던 그는 16세에 아바나 정치감옥에 수감되어 강제노동을 겪었고, 17세에 스페인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42세 때 스스로 일으킨 독립전쟁(1895년)에서 전사하는 순간까지 디아스포라의 일상을 살았다. 모든 유배의 순간들을 그는 끊임없는 집필로 채워나갔고, 반제국주의를 딛고 비판적 사유와 실천으로 라틴의 고유한 정체성을세웠다.
창조적인 사유와 함께 인류의 진정한 해방을 향한 마르티의 의지는 오늘날에도 국가와 시대의 경계를 넘어선다. 문학의 혁명성을 일찍 간파한 산문과 연설문은 19세기 탈식민과 신제국주의 양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독립에 대한 이상 등 현대성의 거의 모든 주제에 촘촘하게 접근하고 있다. 또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옹호, 영성적인 우주관, 생명 윤리와 헌신 등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호세 마르티의 이상과 혁명, 시대성과 영원성은 권력과 자본을 향해 반기를 드는 21세기 제3세계에도 크게 작동한다.
그의 소명의식이 전 지구적 위기의 욕망 앞에서 문학의 진정한 책무를 향한 새로운 지표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생애에서 거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호세 마르티의 산문은 매우 시적이며,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강렬한 메타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번역한 15편의 에세이는 호세 마르티 전집에서 뽑은 것으로 그의 문학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와 자연, 창조와 투쟁의 수원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학은 그에게 사유의 검이었다. 그의 염결성은 영성적으로 작동한다. 물질주의를 극복하려는, 이상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윤리는 강철같은 진실과 온화한 도덕적 키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항상 그랬다.
짧고 긴 글이 뒤섞여 있어 접근하기 쉽도록 총4부로 나누었다. 1부는 비교적 가벼운 에세이들로 마르티가 꿈꾸는 평등과 자유, 그리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보편적 가치가 드러난다. 2부는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정체성과 통합에 주춧돌을 놓는 마르티의 애정과 자긍심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3부는 에머슨이나 휘트먼 등을 통해 그가 자연주의의 영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문학을 바라보는 지점을 보여주며, 4부는 자신의 조국 식민지 쿠바를 향한 간절한 절규들이 담긴 글이다. 15편만으로 그의 문학이나 사상을 소개하는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지만 그의 삶이 왜 사도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 진실을 엿보는 작은 틈이 되지 않을까.
마르티 특유의 비극적인 언어, 특유의 강렬한 은유들과 문체들, 특유의 자긍심과 격정. 나의 자투리 언어로 그의 뜻을 살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절박한 현실을 넘어 이상을 추구했던 그의 영혼을 나는 정말 사랑했던가. 모든 허위와 변명을 무릅쓰고 이 책을 묶는다.
일상의 감옥에서 어떤 고통에 부딪칠 때마다 호세 마르티를 떠올린다. “오늘날의 인간의 첫 번째 의무는 그 시대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그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린다. 그 시대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의 사도로 불렸던 마르티는 한번이라도 마음껏 웃어보긴 했을까.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문명의 변곡점 앞에서 그가 붙들었던 고뇌는 이제 우리에게 절실한 한 덩이 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세속적인 일상을 영적인 힘으로 변환시키는 그의 실천은 맑은 물 한 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추구한 별의 이상은 위기에 직면한 이 시대의 공공선에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05950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