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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정보

저자/책명
정익진/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출판사/년도
걷는사람/20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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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연과 우연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우연히 빛날 뿐이다”


밀려난 육체의 움직임으로

삶의 숭고함을 다시 쓰기


정익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이 걷는사람 시인선 153번으로 출간되었다. 199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 등 개성 뚜렷한 시집들을 펴내 온 시인은 이번 신작에서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간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소외되고 밀려난 몸들의 숨 가쁜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몸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리듬을 획득해 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의 1부와 2부는 도심 일상의 안락함 이면에 도사린 균열과 노동의 가혹한 풍경을 비춘다. 아파트 외벽 공사 중 추락한 인부의 비극을 다룬 「03동 주민 회보」에서 시인은 “우리는 균열을 보지 못했다”라는 서늘한 한 줄로 타인의 고통을 방치해 온 우리의 무감각을 일깨운다. 시인은 존재의 근거를 관념이 아닌 외부의 압박에 맞서는 육체의 움직임에서 찾는다. 표제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은 감정 노동의 링 위에 선 간호사들을 파수꾼에 빗대며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육체적 고통을 시의 중심으로 불러낸다.


헤드기어를 쓴다.

마우스피스를 문다.

거친 언변이 튀어 나가지 않게.

표정이 무너지지 않게.


(중략)


형광등이 깨진 탕비실, 유리 조각 위에 서서

문을 닫고 비로소 흐느낀다.

규칙적으로 흐느낄 시간이 필요했다.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부분


시집의 중후반부에서는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의 문법을 시적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며 사유의 영토를 넓힌다. 피카소, 폴록, 칸딘스키 같은 거장들의 이름을 경유해 “난 따라만 하지 설명하지 않아”(「파블로 따따라하기」)라고 선언하는 화자는 해석 과잉의 시대를 거부하고 예술 본연의 형태를 되찾으려 한다. 염선옥 문학평론가는 정익진의 시 세계를 타인의 삶과 고통을 온전히 대변하거나 재현할 수 없다는 도덕적 자각 위에서 피어나는 윤리적 세계로 읽는다. 자본의 언어가 지배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시인이 포착한 쫓기는 몸들의 서사는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고유한 안무를 획득하며 삶의 숭고한 리듬을 빚어 낸다. 시집의 결말부에 이르러 시인은 “우리도 산책자가 되어/바람도, 구름도 참 좋은 이 길을 걸어요”(「키세스, 키세스」)라는 말을 건네며, 저마다의 이유로 고립된 사람들을 타자와의 연대가 기다리는 지평선 너머로 이끈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036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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